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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공부방 연 동녘교회 변경수 목사 [경향신문 2005-02-17 18:33]
해피리딩
2009. 8. 14. 00:44
일산 백석동 20평 남짓한 동녘교회 문앞에는 공부방과 도서관 문패가 더 크게 걸려 있었다. 겨울 오후의 햇살이 창을 통해 길게 뻗어드는 교회 안은 평일인데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넘쳤다. 학년이 서로 다른 아이들이 모여서 각 나라의 수도 이름을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저요, 저요’를 외치고, 공부방 옆에서는 변경수 목사(36)가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작은 선물을 챙기고 있는 중이었다.
“취재는 하지 마세요. 그냥 작은 교회에서 공부방을 조그맣게 여는 거예요. 뭐 대단한 일도 아닌데…. 제가 앞으로 10년 뒤에도 이러고 있으면 그 때 오세요.”
한사코 손사래를 쳐가며 ‘취재 거부’를 하는 변목사 옆에서 공부방 선생님 역할을 하는 최성복 사모(33)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무안한 웃음을 지었다.
이곳은 그냥 교회가 아니다. 인근 임대아파트 아이들 수십명이 무료로 다니는 공부방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이 공부방이 아니면 추운 겨울방학 동안 하루종일 집안에서 TV나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 흔한 학원도 여기선 사치에 속하니까.
변경수 목사는 18년전 1년 된 개척교회인 동녘교회에서 신학생으로 봉사하던 자신이 그때와 다름없이 작은 이 교회의 목사로 사목하게 된 것은 분명 ‘첫사랑’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속초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서울 감신대 신학생 시절, 은사이셨던 홍정수 교수께서 상도동에 개척한 교회예요. 군대 가기전까지 전도자로서 봉사했던 첫사랑 같은 교회죠.” 변목사는 갑자기 울컥한지 눈물을 비쳤다.
홍정수 교수는 변선환 전 감신대 학장과 함께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다가 1993년 김홍도 감독을 비롯한 원리주의자들에게 종교재판을 받고 출교되어 목사직을 박탈당했다. 졸지에 ‘목자’를 잃은 동녘교회 ‘어린 양’들은 몇년간 표류했고 3년전 변목사에게 SOS를 쳤다. 제법 큰 교회에서 부목사직을 맡고 있던 변목사는 사례비가 절반 정도밖에 안되는 곳에 옮겨와 할 일은 몇 배나 더 만들었다.
목회일과 교인들 신방만으로도 힘에 부칠 텐데 형편이 넉넉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공부방을 꾸미고 도서관의 책을 들여왔다. 방과후에 그 아이들을 돌보고, 방학 때는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20여명 아이들 점심을 해먹이면서 돌본다. 변목사와 최사모의 두 아이들도 여기서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공부하고, 책을 읽는다. 목수일까지 배워 책장을 비롯한 집기들을 직접 만들어 놓았다. 한달에 한번 휴일을 골라 공연을 보거나, 자연학습을 나간다. 아이들 개개인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가정방문도 다녔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공부방에 오는 한 초등학교 6학년생에게서 잊지 못할 카드를 받았다. 엄마가 하루종일 식당일을 하고, 아버지는 몸이 아파 집에 누워있는 그 아이는 4학년, 7살 난 동생과 함께 공부방에 매일 오는 학생이었다. 카드에는 ‘그 전에는 집에 있는 것이 감옥같았는데, 공부방에 오면서부터 너무나 행복해졌다’고 썼다.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저도 참 좋아요.” 변목사는 이즈음에서 환하게 웃었다.
“전도의 방편으로 공부방 여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교회 다니는 아이들은 그 교회 열심히 다니라고 하고, 교회 안 다니는 아이들에게도 억지로 전도하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오면 좋겠다고 하는 정도지요. 아이들을 보면서 절대적 빈곤보다 더 힘든 것이 정서적 빈곤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무경기자 lm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