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정 2002년 5월호]아픔을 딛고 자라는 아이들
[새가정 2002년 5월호] 아픔을 딛고 자라는 아이들
『너도 하늘말나리야』, 『종이밥』
아이를 키우면서 가끔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을 가질 때가 있다. 내 아이가 어떤 일로도 고통받지 않고 행복하게 행복하게만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로 가당키나 한 생각인가? 아니 설사 그럴 수 있다고 해서 아이가 마냥 행복해할까? 때로는 힘겹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아픔을 딛고 서야만 아이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어른들 때문에 힘겨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이 때로 힘겨워하면서도 아픔을 이겨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흐뭇하다. 이 달에 소개하는 『너도 하늘말나리야』(푸른책들)와 『종이밥』(낮은산)은 독자들의 가슴을 많이 아리게 할 것 같다.
너도 하늘말나리야
이름 자체가 생소한 ‘하늘말나리’는 주황색 나리꽃의 종류인데, 다른 나리꽃처럼 땅을 보지않고 하늘(희망)을 향해 피는 꽃이라서 그렇게 불리운다고 한다.
이 책은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세 친구인 미르와 소희, 바우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혼한 엄마를 따라 달밭 마을로 온 미르, 부모 없이 할머니와 사는 소희, 엄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사는 바우는 자라온 환경은 다르지만 ?가정의 결손?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친구들이다.
아빠와의 이혼이 엄마에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미르는 엄마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항을 하면서 또래 친구들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소희는 지나치게 조숙한 모습을 가지고 스스로와의 대화를 통해 반성적인 사유를 하는 아이이다. 바우는 엄마를 잃은 충격으로 자신이 대화하고 싶은 사람하고만 이야기하는 ?선택적 함구증?에 걸려 있다. 가정의 결손은 이렇게 세 아이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타인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다.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아이들은 자신의 아픔을 버거워하면서도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내면에 있는 거울에 비쳐 봄으로써 자신의 상처뿐만 아니라 타인의 아픔까지도 들여다보게 된다. 바로 이러한 소통의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들은 성장해 가는 것이다.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바로 이러한 시기에 있는 세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이 동화를 통해 자라나면서 터득해야 할 삶의 비밀들을 일깨워 준다. 내면의 아픔 때문에 자신에게만 갇혀 있던 세 주인공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하고 감싸 안으면서 주위 사람들을 이해해 가는 과정을 보며 독자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이 동화는 어른들에게는 변화해 가는 아이들의 성장 환경을 생생하게 보여 줌으로써 두 세대간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많은 아이들이 가정의 결손으로 인해 상처를 지니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 상처를 지닌 이들에게 작은 힘이 되고 이해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작가 이금이 씨는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이의 마음도 넉넉히 감싸 안을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이 소설은 가정의 불화로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자신이 가진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준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나 부모님을 미워하는 친구들이 이 책을 읽으면, 위로를 받고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훌쩍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종이밥
『괭이부리말 아이들』에서 가난한 동네를 배경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따뜻한 눈길과 잔잔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던 작가 김중미 씨의 신작이다.
송이네 동네는 산등성이까지 아파트촌이 들어서서 이제는 산쪽대기에 섬처럼 남아 있는 판자촌이다. 송이는 오빠 철이가 학교에 가고 나면 문이 잠겨진 방에서 혼자 놀아야만 한다. 심심한 송이가 발견해 낸 것이 바로 종이밥. 송이가 혼자 놀던 방에는 언제나 종이 조각이 흩어져 있었고, 송이는 그때부터 종이를 씹기 시작했다. 종이를 입에 넣고 씹으면 밥풀냄새가 나서 좋기도 하고 껌처럼 재미있기 때문이다. 잠겨진 방안에 혼자 놓인 어린 아이가 심심하고 배가 고파서 종이를 씹는 풍경을 떠올리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송이에게는 종이가 바로 밥이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송이는 학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정작 송이가 가야 할 곳은 학교가 아니라 절이다. 할머니가 송이를 절에 맡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병든 할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고, 할머니는 할아버지 병수발만도 벅차다. 어린 철이는 동생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지만, 철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송이를 홀로 떠나보내야 하는 식구들에게서는 서로를 배려하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한없이 따뜻하다.
어쩔 수 없는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어내려는 안타까운 마음과 그것을 따뜻하게 지켜보는 작가의 시선이 어우러져 『종이밥』은 읽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송이와 철이 오누이를 통해 독자들의 마음 속에 약하고 힘없는 이들에 대한 사랑이 자리잡기를 희망하는 작가의 의도는 이렇게 완전히 성공하였다.
그림은 『마당을 나온 암탉』을 그렸던 김환영 씨가 그렸는데 작품의 무대가 되는 인천의 이곳저곳을 직접 다니며 취재하였다고 한다. 사실적이고 사진적인 느낌보다는 조금은 우화적인 표현을 하고자 했던 화가는, 자유로운 느낌을 살리기 위해 처음에 밑그림을 그렸던 복사지 위에 연필 선과 펜 선을 얹혔고 그 위에 담채를 입혀 그림을 완성했다. 이러한 화가의 의도를 잘 살리기 위해 부드러운 갈색 한지 느낌을 주는 종이를 사용했는데 참 잘 어울린다.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려내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하는 화가의 마음이 그림속에 그대로 담겨져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착잡했다. 이와 비슷한 환경에 많은 아이들이 처해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가 낸 세금이 정말 필요한 곳에 잘 쓰여져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덜 고통받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물론 우리들의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할 것이다. 아이와 함께 책을 보고 느낌을 나누는 것도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