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문화」기고원고 - 2006년) - 출판계와 아침독서운동
(「출판문화」기고원고 - 2006년)
출판계와 아침독서운동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소리들도 많고 책을 읽히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사실 아이들은 책읽기를 아주 좋아한다. 지금까지 독서운동을 해 오면서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은 책을 좋아하는 아이와 싫어하는 아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많이 접해 본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문제는 좋은 책을 쉽고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여건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제는 가정과 사회, 그리고 학교에서 책을 즐겁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마련하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힘을 모아야만 한다. 많은 연구 결과에서 나온 것처럼 초·중·고등학교 시절의 독서는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할 만큼 중요하다. 이 시기에 바른 책읽기 습관을 들인다면 그 아이의 삶은 훨씬 풍족하고 행복해지리라 확신한다.
아이들과 책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
도서관에 갈 시간조차 내기 힘든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공교육에서 제도적으로 책 읽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침독서운동을 시작하였다. 아침독서운동은 학교에서 매일 아침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아침자습시간을 활용하여 10분 동안 학생과 교사가 함께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는 독서운동이다. 과다한 학습량, 휴대폰, 인터넷, 텔레비전과 게임에 둘러 쌓여 있는 아이들에게 최소한 하루에 10분이라도 차분하게 책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자는 것이 아침독서운동이 호소하는 내용이다.
아침독서추진본부에서는 지금까지 아침독서운동을 확산하기 위한 몇 가지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왔다. 우선 아침독서운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2005년 3월에 일본의 사례집인 『아침독서 10분이 기적을 만든다』(청어람미디어)를 번역하여 소개하였고, 2006년 2월에는 우리나라 사례집인 『대한민국 희망 1교시 아침독서 10분』(청어람미디어)을 발간하였다. 이와 더불어 아침독서운동을 소개하는 「아침독서신문」(초등, 중등용)을 매월 발행하여 전국의 모든 초․중․고등학교와 공공도서관, 민간도서관 등에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또한 학급문고가 부족하여 아침독서를 실시하기 어려운 학급에는 교사들의 신청을 받아 좋은 책들로 학급문고를 보내 주었다. 학급문고 보내기 사업은 많은 출판사들이 호의를 가지고 협력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출판사뿐만 아니라 선한 뜻을 가진 많은 분들이 아침독서운동을 후원하고 동참해 주어 큰 어려움 없이 즐겁게 이 일을 할 수 있었다.
학교의 아침을 바꾸는 아침독서운동
일본에서 아침독서운동이 시작된 것은 1988년에 두 명의 교사가 본인들이 재직하는 학교에서 아침독서를 실천하면서부터이다. 두 명이 시작한 아침독서의 불꽃은 18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의 전체 학교 중에서 절반이 넘는 학교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것을 보고 한번 시작해 보자는 용기를 겨우 낼 수 있었다. 단 하나의 학교, 아니 한 학급이라도 우리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아침독서를 실시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새로운 독서운동을 시작할 엄두를 낸 것이다.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아침독서의 효과가 알려진다면 좀더 많은 학교에서 아침독서시간이 만들어지고 아이들이 이 시간에 책과 행복하게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시작하였다.
그런데 아침독서운동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아주 뜨거웠다. 마치 마른 풀에 불을 붙인 것 같은 반응이었다. 신문, 방송, 잡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 다양한 언론매체에서 아침독서운동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이렇게 아침독서운동의 효과가 알려지고 사회적 관심을 불러 모으면서 아침독서를 실시하는 학교들이 전국에 걸쳐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2005년 7월 21일에 2006년부터 학교에서 논술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에는 아침독서시간 운영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또한 서울시 교육청에서도 「2006년 서울초등교육계획」에서 아침 시간 및 틈새 시간을 활용한 ‘하루 10분 이상 독서하기 운동’을 전개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충남교육청에서도 ‘2006년도 독서교육 계획’에 아침독서운동을 중요 추진과제로 설정하고 일선 학교에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2005년도에 아침독서운동에 참여하는 학교가 500여개교였는데 올해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학교에서 실시하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민간에서 시작된 아침독서운동이 학교와 교육청, 그리고 교육부를 움직이면서 학교의 아침을 책 읽는 아침으로 바꾸고 있다.
출판계가 아침독서운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출판의 불황을 타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인데 아침독서운동이 그러한 역할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다. 아침독서가 매일 진행되다 보면 학급문고나 학교도서관의 책이 많이 부족하게 된다. 따라서 학급문고나 학교도서관에 새책을 보충해달라는 요구가 자연스럽게 일면서 일선 학교의 도서 구입량이 늘어나게 된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아침독서를 꾸준히 하고 있는 학교의 아이들은 보고 싶은 책을 서점에서 구입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부모님과 함께 서점이나 공공도서관에 훨씬 자주 가게 되었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많이 있다. 이런 점을 볼 때 아침독서운동이 활성화되면 가장 큰 혜택을 볼 수 있는 곳이 출판사와 서점이라 생각된다.
일본에서는 아침독서운동에 대해 출판계가 적극적인 관심과 성원을 보내고 있다. 2000년부터는 일본의 전국 주요 300개 서점에 ‘아침독서 코너’를 개설하고 있다. 또한 각 출판사에서는 아침독서 시장을 겨냥한 도서를 출시하고, 기존 도서들도 아침독서용 묶음으로 상품화하며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2005년 11월 19일자 조선일보 보도를 보면 일본에서 아침독서운동 덕분에 출판사에서 기획한 ‘학급문고’ 명작 세트가 예상을 웃도는 판매고를 올렸다고 한다. 이렇게 아침독서용 서적이 좋은 반응을 거두자 여러 출판사에서 학급문고 세트를 기획하여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아침독서운동의 활성화는 대형 서점의 어린이책 판매대에도 활기를 주고 있다. 마루젠(丸善) 서점의 홍보 관계자는 “아침독서운동을 통해 양서를 접한 것을 계기로 책에 흥미를 갖게 된 아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아침독서가 출판계에 줄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요소는 좋은 독자층을 매년 꾸준히 배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침독서를 통해 초․중․고 12년간 꾸준히 책을 읽은 학생들은 졸업후에도 항상 책을 가까이 하는 수준높은 독자층이 되어 출판계에 화수분이 되어 줄 것이다. 이렇게 배출되는 양질의 독자층은 출판계에 큰 활력을 주게 되리라. 또한 이를 통해 책을 읽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출판계가 할 수 있는 일
강연회에서 만난 지방의 한 교감 선생님은 부족한 학교 예산에 비해 책값이 너무 부담된다며 출판사에 보급판 책을 만들어 달라는 얘기를 꼭 해 달라고 신신당부하였다. 도서 구입에 사용할 학교 예산이 충분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고 분명 개선되어야 할 사안이다. 그렇지만 현실이 그러하다면 예산 확보를 위한 노력과는 별개로 좋은 책이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의 손에 들려질 수 있도록 출판사에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면 좋겠다. 좋은 책을 고를 줄 알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이들을 많이 만드는 일에 뜻을 가진 모든 이들의 힘이 모아져야만 한다.
제작비 부담이 따르겠지만 교사나 학부모들의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출판사에서 학급문고용으로 별도의 보급판을 출간하는 것도 검토했으면 한다. 표지의 형태를 바꾸거나 종이 질을 낮추는 등의 방식으로 제작원가를 줄여 학급문고를 겨냥한 보급판을 내면 교사나 학부모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보급판으로 학급문고용 꾸러미를 만드는 것도 검토했으면 한다. 서점에서는 이렇게 만들어진 학급문고용 도서들을 별도로 전시해서 학부모들이 학급에 기증할 학급문고를 편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배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함께 어우러지면 신학기가 되면 학급문고를 고르는 모습이 서점의 새로운 풍경이 되고, 우리 사회의 새로운 문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
이와 함께 제작한 지 일정 기간이 지난 재고도서를 출판사에서 학교에 저렴하게 공급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하였으면 한다. 각 출판사마다 반품도서나 구정가도서, 재고 도서의 처리로 고민을 하고 있고, 일부 도서는 폐지 가격으로 처리되고 있다. 이에 비해 학교 현장에서는 마땅히 읽을 책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지혜를 모은다면 출판사와 학교가 모두 좋은 상생의 방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침독서추진본부에서 발간하는 아침독서신문 한 장을 전시회에서 보고 학교에서 아침독서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교장선생님도 있었다. 이처럼 아침독서운동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담긴 아침독서신문이 좀더 많이 제작되어 많은 선생님들에게 전해진다면 아침독서운동이 좀더 많은 학교에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아침독서신문의 제작과 배포에 대한출판문화협회와 서점들이 지원과 협력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책 읽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
우리는 언제나 처한 환경 때문에 책읽기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아이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날로 심화되고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꿈은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이루어나가야 할 일이다. 이런 절박한 마음이 바로 평범한 사람들을 아침독서운동에 나서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좋은 책을 통해 느끼는 감동과 즐거움을 아이들이 직접 느꼈으면 좋겠다. 책을 보면서 삶을 풍요롭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졌으면 한다. 그리하여 그 아이의 삶에서 책이 항상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우리 아이들의 손에 휴대폰이 아닌 책이 들려 있는 세상을 함께 꿈꾸어 본다. 꿈만 꾸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이라도 내딛는 일을 출판계와 함께 하고 싶다.
한상수(아침독서추진본부 본부장, 어린이도서관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