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저널」 2006년 9월호 기고 원고) - 지하철역 도서관이 대안이다
(「출판저널」 2006년 9월호 기고 원고)
독서운동가가 본 무가지, 그리고 무가지 파고를 넘어선 독서를 위해서
지하철역 도서관이 대안이다
출근 시간대에 지하철을 타보면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무료신문을 보고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잠자고 있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모습이 일상적인 풍경이다. 무료 신문이 등장한 지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료라는 매력과 직접 건네주기까지 하는 친절한 배포는 지하철 풍경을 급격히 바꾸어 놓았다.
독서운동가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현상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같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긍정적인 면을 꼽는다면 무엇보다 사람들이 피곤한 출근시간에 뭔가를 읽는 행위를 한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무엇을 읽는가까지 따지면 아쉽기는 하지만 글로 된 인쇄매체를 읽는 모습은 반갑기도 하고 더 나은 읽기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정적인 면은 매일 수백만 부씩 버려지면서 낭비되는 한정된 종이 자원 문제와 함께, 무료 신문에 들어 있는 내용이 자극적이고 깊이가 없기 때문에 읽는 이들의 지적 발달이나 사회 구성원의 지적 수준을 높이는 데는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는 면을 들 수 있겠다. 비유를 한다면 이러한 매체는 패스트푸드와 비슷하다 할 것이다. 자극적인 맛으로 유혹하는 패스트푸드 위주의 식습관을 갖게 되면 결코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없다. 웰빙 문화가 유행하는 현실에서 읽기 문화에도 웰빙의 바람이 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개탄만 하는 것은 생산적이지도 않고 책임있는 자세도 아닐 것이다.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한데, 필자는 지하철역 도서관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지하철을 장악한 무료신문 현상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사람들에게 읽을만한 거리를 쉽게 제공한다면 그들은 기꺼이 읽을 자세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지하철역마다 비워있는 공간이 상당히 많다. 일부 역에는 지하철문고라 하여 책장 몇 개에 기증받은 책들을 꽂아두고 있지만 운영은 거의 방치되고 있는 형편이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좋은 책을 놔두면 가져가니 가져가도 무방한 책들만 놔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에 필요한 시설을 하고 시민들이 읽고싶은 욕구가 생길만한 책들을 비치하여 운영한다면 자연스럽게 책을 보게 될 것이다. 지하철역 도서관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려면 전담인력을 두어야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방안이 있을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사서들을 고용하는 것이겠지만 당장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현실적인 방안을 생각해보면 각 자치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공공근로제도나 공익근무요원을 활용하거나 문헌정보학과 대학생들을 활용한 인턴근무제도 가능할 것이다. 또 다른 방안은 우리 사회에 유휴인력으로 존재하는 고학력 노인들을 활용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비치도서는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예산을 세워 신간 중심으로 구입하는 것이다. 이것이 당장 어렵다면 공공도서관에 있는 책들(신간 중심)을 대여해주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지하철역 도서관이 활성화된다면 우리 사회의 지하철 풍경이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시민들이 책보기를 싫어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원하는 책을 이용할 도서관이 가까이하기에 너무 멀리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책을 사러 서점에 들르는 것도 여간해서 쉽지 않다. 이런 시민들에게 관심이 있는 책들을 모아놓은 작은 도서관이 지하철역에 있어 수시로 이용할 수 있다면 이보다 반가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경제가 어려워 주머니 사정이 만만치 않은데 보고싶은 책을 일일이 사기란 쉽지 않다. 설사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도 바쁜 현대인이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가는 것도 큰 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일이다.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 시민들은 요즘 많이 읽는다는 베스트셀러도 보고 싶고, 생활에 도움을 받을만한 책도 보고싶다. 생활에 치여 살다가 문득 내가 이러다가 바보가 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때도 있다. 이런 생활인들에게 출퇴근길에 편하게 들러 책을 빌려볼 수 있는 지하철역 도서관은 참 고마운 존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하철역 도서관은 우리 사회에 있는 유휴 공간과 인력을 잘 활용하고 운영의 묘를 살린다면 적은 사회적 비용으로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다. 이 제도의 성과에 대해 확신이 없다면 당장 한 곳이라도 시범적으로 실시해보자. 6개월 정도만 실시해보아도 평가가 나올 것으로 본다.
언제까지 책 안읽는 사회 풍토를 개탄만 할 것인가?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때 사람들은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책과 함께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제대로 운영되는 지하철역 도서관이 모든 지하철역마다 만들어져 잘 이용된다면 지하철 문화는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 책 읽는 문화를 확산하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상수(아침독서추진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