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마태복음 5:4)
최향숙 집사님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면서 가슴이 많이 뜨끔했습니다. 태안 주민들을 위한 기도 부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모든 삶의 기반을 잃어버린 그 분들의 아픔을 생각하며 기도를 잇지 못한 그 기도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네요.
그 날 이후 내가 너무 타인의 아픔이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하고 무신경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순간순간 뉴스를 들을 때 잠깐 안타까워하다가 일상에 빠지다보면 그저 내일 하는데 바빠 그분들의 고통을 망각하곤 했습니다. 그분들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이지요.
생각해보니 당사자들로서는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태안 사태,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건, 안양 어린이 실종 사건과 같은 뉴스를 보면서도 진정으로 슬퍼하는 마음을 갖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슬퍼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선 슬퍼하는 당사자들을 주님께서 위로하신다는 말씀이지만, 저는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슬퍼하는 사람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의 아픔을 그 입장이 되어 내 아픔처럼 생각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도움을 주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강도만난 사람을 도와준 사마리아인은 고통에 빠져있는 사람의 입장에 선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전에 본인이 비슷한 경험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강도만난 사람이 지금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하며 그 아픔을 함께 나누고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한 것이지요. 그동안 제 삶의 태도가 사마리아인이 아니라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살았던 듯싶어 가슴이 뜨끔합니다.
올해 살아가면서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입니다. 한자로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되겠지요. 고통당한 이웃의 입장에 서서 아픔을 나누기, 누구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 때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기, 아내와 아이들 입장에 서서 생각하며 살아가보려 합니다.
최향숙 집사님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면서 가슴이 많이 뜨끔했습니다. 태안 주민들을 위한 기도 부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모든 삶의 기반을 잃어버린 그 분들의 아픔을 생각하며 기도를 잇지 못한 그 기도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네요.
그 날 이후 내가 너무 타인의 아픔이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하고 무신경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순간순간 뉴스를 들을 때 잠깐 안타까워하다가 일상에 빠지다보면 그저 내일 하는데 바빠 그분들의 고통을 망각하곤 했습니다. 그분들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이지요.
생각해보니 당사자들로서는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태안 사태,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건, 안양 어린이 실종 사건과 같은 뉴스를 보면서도 진정으로 슬퍼하는 마음을 갖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슬퍼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선 슬퍼하는 당사자들을 주님께서 위로하신다는 말씀이지만, 저는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슬퍼하는 사람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의 아픔을 그 입장이 되어 내 아픔처럼 생각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도움을 주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강도만난 사람을 도와준 사마리아인은 고통에 빠져있는 사람의 입장에 선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전에 본인이 비슷한 경험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강도만난 사람이 지금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하며 그 아픔을 함께 나누고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한 것이지요. 그동안 제 삶의 태도가 사마리아인이 아니라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살았던 듯싶어 가슴이 뜨끔합니다.
올해 살아가면서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입니다. 한자로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되겠지요. 고통당한 이웃의 입장에 서서 아픔을 나누기, 누구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 때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기, 아내와 아이들 입장에 서서 생각하며 살아가보려 합니다.
김경윤 | 2008-01-26 09:50 [X] |
우리 나라에도 이에 대한 정겨운 속담이 있답니다. "홀애비 마음 과부가 안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는 마주함의 동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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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6 18:41 [X] |
우리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수 있을 수 있는 것은 그와 똑같은 아픔은 아니더라도 우리도 각자 아픔을 가지고 있을 때가 아닌가 해요. 타인의 아픔에 쉽게 공감하는 사람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겠지요. 그래서 복이 있는 것일 거고요. 하지만 함께 아파하려고 하는 노력도 소중하다고 예수는 인정해주실 것같네요. 그래서 저같이 쉽게 아파하지못하지만 지향점은 가지려고 하는 사람은 위로가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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