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정 2002년 11월호]
우리 아이 잘 먹게 하기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와 『뱃속 마을 꼭꼭이』
모처럼 여유 시간이 생긴 추석 연휴기간 동안 몇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책을 많이 읽지 못했더니 심신이 안정이 안되고 불안하기조차 했다. 삶을 살아가면서 종종 느끼는 것인데, 가장 행복함을 느꼈을 때가 어떤 때인가를 돌이켜보면 아들 녀석과 놀 때와 좋은 책을 읽었을 때인 것 같다. 마음에 충만함을 주는 정말 좋은 책을 읽었을 때의 희열은 느껴본 사람은 충분히 공감하리라 생각된다.
이번에 읽은 책들이 모두 좋았는데, 가장 큰 인상을 준 것은 『잘먹고 잘사는 법』(김영사)이란 책이다. 한동안 온 나라를 뜨겁게 했던 동명의 TV프로그램을 책으로 만든 이 책을 보면서 평상시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먹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제대로 먹고 사는 문제는 제대로 태어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다. 태어나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먹는 것은 평생 동안 반복되는 피할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중요한 먹는 것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아이들의 생일 파티는 대부분 패스트푸드 전문점에서 이루어진다. 기름진 패스트푸드와 탄산음료, 단 음식에 둘러싸여 있는 아이들.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순례해야 하는 아이들중에는 하루에 단 한끼도 정상적인 식사를 못하는 경우도 많다.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지 전혀 교육받지 못한 아이들. 어른들의 무관심과 무지로 인해 이 아이들의 몸은 점점 비만해지고, 성격은 거칠어지며 편식에 길들여진 몸은 각종 알레르기 질환과 감기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 정말로 아이들을 둘러싼 먹는 환경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다. 그동안 먹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많은 반성을 하였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의 식생활 습관과 관련해서 나온 어린이책들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이런 주제의 책은 놀랍게도 극히 드물었다.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 적극 권장하고 싶은 책을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 어린이 책 출판사의 기획자들이 잘 먹는 법에 대한 책들을 많이 출간해 주기를 희망한다.
여러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서 기획된 책들은 찾지 못했고, 겨우 찾은 것이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국민서관)와 『뱃속 마을 꼭꼭이』(현암사)였다. 두 권 다 아주 수작이다. 음식을 이것저것 가리고 도무지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 아이들은 부모들의 큰 고민거리다. 편식을 하거나 제대로 씹지 않는 식습관을 가진 아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들이다.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
롤라는 쪼끄맣고 아주 웃기는 아이이다. 그런데 가끔 부모님이 오빠인 찰리에게 롤라의 밥을 차려 주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롤라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란 것. 롤라는 콩하고 당근하고 감자하고 버섯하고 스파게티하고 달걀하고 소시지는 싫다고 하고, 토마토는 절대로 안 먹는 아이이다.
착한 오빠 찰리는 그런 롤라를 위해 좋은 꾀를 낸다. 당근은 ?오렌지뽕가지뽕?이라고 하고, 콩요리는 ?초록방울?이 된다. 으깬 감자는 ?구름보푸라기?가 되고 생선튀김은 바다 인어들이 먹는 ?바다얌냠이?로 변해버린다.
찰리와 롤라의 이야기는 아이들과 정말 맛있게 골고루 음식을 먹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 준다. 그것은 억지로 떠 먹여 주고, 힘들여 어르고 달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세상 안으로 쑥 들어가 함께 즐기며 아이들 스스로 밥을 먹게 하는 것이다. 변덕쟁이이지만, 순수하고 호기심 많은 어린 동생의 마음을 진정으로 잘 이해해 주는 찰리 오빠. 오빠의 상상력 덕분에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갖게 되는 롤라는 행복한 아이이다. 밥 먹을 때마다 진땀을 빼는 부모님들과 함께 읽기에 가장 적당한 책이다. 이 책은 2000년에 영국 도서관 연합회 선정 올해의 최우수 그림책으로 꼽혔다고 한다.
이 책의 장점은 다소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빠질 수 있는 의도성과 진부함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점이다.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웃음이 나오게 만든다. 삽화도 아주 기발하다.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사진과 그림은 이 책이 가진 큰 장점이다. 롤라의 얼굴에 밥을 먹기 싫어하는 아이의 표정이 그대로 살아 있어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정말로 재미있는 책이다. 책을 보며 아이들이 즐거워할 수 있다면 일단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거기에다가 편식하는 습관까지 고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지 않을까?
꼭 칭찬해주고 싶은 것은 번역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은 번역으로 책 전체를 망가뜨리는 경우가 왕왕 있어 아쉬움을 주는데, 이 책은 기발한 의역으로 책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하나만 예를 들면 ?오렌지뽕가지뽕?은 ?Orange twiglets from Jupiter?를 번역한 것이다. 쉽지 않은 번역인데 이 단어를 찾기 위해 기울인 역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뱃속 마을 꼭꼭이
이 책은 뱃속에 사는 꼭꼭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음식을 제대로 씹지 않고 급하게 먹으면 꼭꼭이들이 그걸 부수느라 고생을 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보여진다. 그리고 상황이 심각해져 지친 꼭꼭이들이 파업을 하면 배탈이 나게 된다. 화난 꼭꼭이들은 배를 발로 쾅쾅 차고 그때마다 주인공 누리는 복통을 느낀다. 찬 음식이 들어와 뱃속마을이 꽁꽁 얼어 붙고 꼭꼭이들과 음식 나르는 기차길도 얼어 붙는다. 그 다음에는 따뜻한 물이 들어와서 녹이는 장면이 나오고 배 위에 따뜻한 찜질을 하자 뱃속마을이 녹는다.
어린이들에게 음식을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는 올바른 식습관을 길러 주는 책으로, 아이들의 시각에 맞추어 우리 몸 속에서 일어나는 소화과정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왜 음식을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어야하는지에 대해 몸 속의 장기를 의인화해서 재미있게 설명한다. 또 어떤 음식이 우리 몸에 해롭고 좋은지에 대해서도 아이와 함께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꼭꼭이들이 야채찰흙으로 장난치거나 완두콩으로 퐁퐁을 타는 장면에서는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우리 아이가 여섯 살 정도 되었을 때 읽어주었는데 거의 이 책을 끼고 살았다. 같은 저자가 쓴 『충치 도깨비 달달이와 콤콤이』와 함께 보았는데 양치 습관과 식습관을 길들이는데 톡톡히 재미를 본 기억이 생생하다. 원고를 쓰느라고 다시 꺼낸 책을 열 살이 된 아이가 어렸을 때(?) 생각을 하면서 재미있게 다시 읽는다.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먹는 습관을 길러주는 좋은 책들이 국내 기획자들에 의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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