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독서신문에 쓴 글

[작은도서관신문2012년10월]아파트도서관 활성화 어떻게 할까?

해피리딩 2012. 11. 24. 21:37

아파트도서관 활성화 어떻게 할까?
기획 아파트도서관
300세대 이상 공동주택단지에 작은도서관 설치가 의무화된 지 오래지만 실제로 잘 운영되는 아파트도서관은 많지 않다. 법 규정에 맞춰 아파트도서관을 만든다고 해도 이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번 기획에서는 아파트도서관을 잘 만들고 지속성을 갖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알아본다. 그리고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열정적인 노력으로 멋진 아파트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하는 천안 느티나무도서관 사례를 통해 아파트도서관의 가능성을 모색해본다.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이 예전보다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모든 주민들이 자유롭게 도서관 시설을 이용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다. 아파트에 설립된 작은도서관(이하 아파트도서관)이 부족한 도서관 인프라를 보완하는 대안으로 기대를 받고 있지만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작은도서관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적지 않다.

아파트도서관의 역사
아파트도서관은 1994년 12월 30일부터 시행된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5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을 건설하는 주택단지’에 ‘문고’ 설치를 의무화하면서 처음 등장하였다. 이 조항은 2006년에 300세대로 기준을 바꿔 개정되었다. 아파트도서관의 기준은 33㎡ 이상의 면적에 여섯 개 이상의 좌석과 천 권 이상의 자료를 갖추는 것이다. 자료의 경우 천 권 이상이라는 기준만 규정된 관계로 헌책방에서 저가로 구입해서 수량만 채우는 폐단이 있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2007년 10월 25일부터 시행된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 고시 제2007-422호를 통해 아파트도서관에 비치하는 도서는 850만원의 비용을 들여 새책을 구입해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이처럼 아파트도서관에 대한 법 규정은 주민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금씩 개선되어왔다. 도서관 인프라가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던 90년대 중반에 새로 조성된 아파트단지마다 작은도서관을 만들어 아파트 주민들이 도서관 혜택을 볼 수 있게 하려던 정책 당국의 의지가 엿보인다. 그렇지만 아파트도서관에 대한 기준이 아주 낮고 조성 이후 운영방안에 대한 제대로 된 대안이 마련되지 못한 한계가 있어 대다수 아파트도서관이 실제 도서관 역할을 못한 채 방치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지자체의 역할 중요
아파트도서관이 잘 운영되려면 조성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조성 이전에는 아파트도서관의 공간과 초기 장서 구성 전에 건설회사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작은도서관 담당부서가 협의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도서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에 도서관을 배치하고, 주민들이 실제 이용할 만한 도서로 초기 장서가 꾸려지려면 건설회사가 주민 공동시설 설계 시점부터 지자체의 도서관 담당부서와 협의해서 진행하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주택법에는 아파트도서관 설치가 의무화돼 있지만 현실을 보면 아파트도서관을 설치하지 않아도 준공허가를 내주는 지자체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회사가 굳이 비용을 들여 아파트도서관을 설치할 리 만무하다. 따라서 지자체는 아파트 준공허가 담당부서와 협의하여 아파트도서관을 설치하지 않으면 준공허가를 내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도서관 설치도 건설회사가 일방적으로 알아서 하는 게 아니라 사전에 도서관 담당부서와 협의하는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도서관을 잘 조성하려면 건설회사가 도서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만큼 작은도서관 사업을 진행하는 사회적기업과 협력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도서관 전문 사회적기업은 해당 사업에 전문성을 갖고 있어 도서관의 공간 구성과 장서 구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전담인력 확보 방안
조성 이후에는 도서관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운영인력과 재원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아파트도서관에 꼭 필요한 게 전담 운영인력이다. 자원봉사자는 말 그대로 자원봉사자이지 운영주체가 되기 어렵고 그 한계도 뚜렷하다. 모든 일이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볼 때 도서관이 잘 운영되려면 전담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전담인력은 주민 중에서 도서관 관련 지식이 있거나 도서관 자원봉사 경험이 있는 사람이 바람직하다. 사람들과 관계가 원만한 사람 중에서 도서관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선정한다.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전담인력이 없는 작은도서관에 인력을 파견하는 사업을 일자리 창출 정책과 연계해서 진행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했으면 한다. 도서관 인력파견 사업은 일자리 창출 정책에 가장 부합하는 사업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경기도가 2012년 7월부터 시행한 ‘도민사서 제도’는 아파트도서관의 운영인력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도민사서 제도’는 관련 자격이나 도서관 자원봉사 경력이 있는 사람을 사서로 고용하여 선정된 민간 작은도서관에 파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도민사서는 2인 1조로 일하면서 주 3일 월 60시간 정도를 일하고 40만원의 활동비를 받는다. 급여수준이나 대우가 낮아 한계가 있지만 전담 인력이 없는 아파트도서관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른 광역지자체들도 이를 벤치마킹하면 좋을 듯싶다.
서울시의 경우 현재 의욕적으로 펼치는 마을공동체 사업과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서울시가 지난 9월 11일 발표한 ‘마을공동체 지원 기본계획’을 보면 마을활동가 양성과 마을공동체 설립 지원 방안이 있다. 마을의 작은도서관은 마을공동체 사업의 중심이 될 수 있다. 마을사업 제안서를 작성해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설립비용과 운영비용을 지원한다고 하니 아파트도서관에서도 관심을 가지면 좋을 듯싶다. 도서관 자원봉사자들이 마을활동가로 활약할 수 있으리라 본다.
지자체에서 인력 지원을 받기 어려운 지역이라면 자체적으로 전담인력을 마련하는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 이 경우 인건비 확보가 문제인데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아래에 다시 서술하겠다.

자원봉사자 확보와 운영위원회 구성
도서관이 잘 운영되기 위해선 전담인력 못지않게 열정이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중요하다. 뭐든지 혼자 하면 외롭고 힘이 들지만 함께 하면 겁날 게 없고 즐겁기 마련이다. 이웃과 왕래가 적은 다소 삭막한 아파트에서 도서관은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다. 자녀 교육 등 비슷한 고민을 하는 주민들이 모여 의기투합하기도 쉽다.
도서관은 내 집을 나서면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좋은 마실 공간도 된다. 아이들과 함께 가기도 좋고, 무엇보다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라 좋다. 처음 도서관을 시작할 때 도서관에 온 주민들 중에서 도서관이나 책에 관심이 많은 이들을 자연스럽게 자원봉사자로 이끈다. 자원봉사자가 몇 명만 모여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아파트도서관이 자원봉사자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좋은 사례들을 만들고 있다. 또 자원봉사자 중에서 도서관을 대표하는 관장을 선임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렇게 도서관을 중심으로 모이게 되면 아파트 생활이 훨씬 즐거워진다. 어떤 아파트도서관에서는 열성적인 자원봉사자들이 입주자대표회의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동대표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는 대출권수를 늘려주는 등 약간의 혜택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도서관 일은 생각보다 많다. 시간도 많이 들어 때론 개인 생활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좋은 뜻으로 모였지만 가끔은 의견이 충돌하여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지칠 수 있고, 봉사 활동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이고, 즐겁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도서관 자원봉사가 일로 다가오기보다는 팍팍한 삶에 신선한 활력소가 되도록 분위기를 만들자.
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도서관 운영주체가 만들어지면 다음 순서는 도서관운영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운영위원회는 실질적으로 도서관 운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 운영위원회는 전담사서와 자원봉사자 대표들이 중심이 되고, 여기에 입주자모임 대표와 시의원, 도서관에 관심이 많은 지역 명망가 등으로 구성한다.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까?
도서관이 활성화되고 지속적으로 잘 운영되려면 재원 확보가 꼭 필요하다. 도서관 운영에 필요한 재원은 크게 전담인력 인건비, 도서구입비, 기타 운영비로 나눌 수 있다. 바자회나 후원금 등으로 확보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지만 기본 재원은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지원받는 게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도서관 운영비 지원을 입주자대표회의에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운영하는 예산 대부분이 주민들에 의해 조성되는만큼 대다수 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이용하는 도서관 운영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2010년 9월에 개정된 ‘서울시공동주택표준관리규약’ 33조에는 아파트 잡수입의 40% 범위 이내에서 공동체 활성화 지원이 가능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이 규약을 보면 단지내 입주민은 10인 이상으로 구성된 ‘공동체 활성화 단체’를 구성할 수 있고, 입주자대표회의는 공동체 활성화 단체가 추진하는 사업에 소요되는 비용을 잡수입의 100분의 40(예시) 범위내에서 사업계획 및 추진실적 등에 따라 매년 또는 매분기 집행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또한 단지내 공동체 활성화 단체는 입주민 상호간 또는 입주민이 참여하는 자원봉사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하여 전담운영자를 지정할 수 있고 소정의 사례비를 지급할 수 있다고 명시하여 인건비 지원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아파트도서관의 운영위원회나 자원봉사자 모임은 이 규약에서 규정된 ‘공동체 활성화 단체’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도서관 운영주체들이 공동체 활성화 단체로 등록하여 법적으로 보장된 지원금을 안정적으로 받게 되면 도서관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데 획기적인 전기가 될 수 있다.
서울시가 아닌 다른 광역지자체의 경우 표준관리규약에 ‘공동체 활성화 단체’에 대한 지원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공동체 생활 활성화를 위한 비용’을 지출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경우는 많이 있다.

지자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지자체는 작은도서관에 도서구입비를 지원한다. 이렇게 지자체의 지원을 받으려면 기본적으로 지자체에 작은도서관으로 등록하고, 일정 기간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지 못한 도서관이라면 지자체의 작은도서관 담당자에게 지원금 집행에 대해 문의하고 우리 도서관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홍보하자. 시·군·구 의원들에게 도서관의 존재를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효과가 있다.
안정적인 운영재원을 마련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관리비와 연계하는 방안이다. 예를 들어 도서관 운영비 지원 명목으로 세대당 월 1,000원 정도의 소액을 관리비와 함께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월 1,000원은 부담되는 수준이 아니므로 아파트 주민들이 도서관 활성화를 위해 기꺼이 낼 수 있으리라 본다. 일률적인 부과 방식에 거부감을 갖는 주민이 있을 수 있으므로 원하는 주민만 선택하도록 하면 된다. 이 경우 운영비를 내는 가구에는 도서대출권수를 늘려주는 등 혜택을 주어도 좋을 것이다. 이 방안을 입주자대표회의에 당당히 제안하자.

더불어 정기적으로 운영비 마련을 위한 바자회도 진행하고, 후원금을 내는 정기 후원자들을 확보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자. 지역내 대형할인점의 후원 마일리지 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많은 할인점들이 모인 영수증의 일정 금액을 지역단체에 후원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니 도서관을 지역단체로 등록하고 아파트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자. 또한 아파트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지역 상점들과 연계하여 이용금액에 따른 마일리지를 상점들이 도서관에 후원금으로 내는 방식도 추진할 만하다. 도서관은 이렇게 후원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지역상점에 ‘도서관 친구’ 스티커를 붙여주고 도서관 회원들에게 안내한다. 주민들이 지역 상점을 이용하고 상점은 이윤의 일부를 마을 주민들을 위한 도서관에 후원하는 것은 마을공동체 구성원으로 서로 윈윈하는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도서관 운영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물론 처음부터 쉽지는 않겠지만 도서관의 소중함을 느끼고 도서관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마음만 모인다면 길은 충분히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도서관이 없는 아파트단지라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자체의 준공 부서에서 도서관 설립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아 실제로 도서관을 만들지 않은 아파트단지도 많다. 이럴 경우 법에 분명히 규정되어 있으므로 건설회사에 도서관을 설립해주도록 요구해야 한다. 실제로 많은 아파트단지에서 입주가 끝난 지 한참 후에 건설회사에 요구해서 도서관 시설과 도서를 지원받은 사례가 많이 있다.
건설회사에 요구할 시점이 지난 아파트단지라면 도서관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주민들이 힘을 합해 도서관 만들기를 추진할 수 있다. 실제로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진 아파트도서관 사례들도 많이 있다. 천안 느티나무도서관이 좋은 사례이다. 먼저 도서관 건립을 추진할 주체들을 만들고 다른 도서관 사례를 참조하여 신나게 추진해보도록 하자. 무엇보다 그 과정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미국의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은 “당신이 무언가를 간절히 소망하면 온 우주가 그 일이 일어나도록 도와준다”고 말한다. 모든 시작은 꿈에서 출발한다. 그 꿈이 간절하다면 충분히 현실로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전국의 모든 아파트단지마다 작지만 소중한 꿈이 담긴 도서관이 들어설 수 있는 날을 꿈꿔본다. 그 꿈이 현실이 되는 데 ㈔행복한아침독서가 함께할 것을 약속드린다.



한상수_㈔행복한아침독서 이사장, 책마을도서관장 / 2012년 10월01일 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