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도서관 이야기』2009년 9월호 칼럼>
내 삶에 울림을 주는 백 권의 책읽기
내게는 책이 나오자마자 바로 봐야 직성이 풀리는 저자가 몇 명 있다. 그들은 대부분 화려한 글솜씨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이 내게 감동을 주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자극을 주는 사람들이다. 오지여행가이자 국제난민 구호 활동가인 한비야도 그 중 한 사람인데, 최근에 나온 『그건, 사랑이었네』(푸른숲)를 맛있는 음식을 맛을 음미하며 아껴 먹듯이 아주 맛있게 읽었다.
이 책에는 눈길을 확 끄는 내용이 들어있다. 한비야는 여고 1학년때부터 단짝 친구와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 1년에 백 권의 책 읽기’인데, 지금까지 이 약속을 특별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매년 지켜오고 있다고 한다. 오래 전에 그녀가 쓴 칼럼에서 매년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수첩에 1번부터 100번까지 쓰면서 한 해 동안 최소한 100권의 책을 읽겠다는 다짐을 한다는 얘기를 인상적으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녀가 오늘날 이룬 성과는 이러한 의도적인 독서가 상당한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한비야는 책에서 대한민국 전 국민이 ‘1년에 백 권 읽기’를 하는 즐거운 상상을 이따금 한다고 얘기한다. 1년에 백 권 읽기를 꾸준히 실천하면서 그 효과와 장점을 느낀 사람으로서 좀더 많은 사람이 이 즐거운 일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즐거운 상상이라고 했지만, 독서운동가 입장에서 이러한 상상을 좀더 구체적으로 현실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꾸준히 읽고 꾸준히 쓰기
1년에 백 권의 책을 읽는 일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녀의 말처럼 50년간 100권씩 꼬박 읽는다고 해도 5천권 남짓 읽을 수 있을 뿐이니 무수히 쏟아지는 책을 생각하면 내 삶에서 만날 수 있는 책이 그리 많지 않다는 조바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1년에 백 권이라는 숫자에 연연할 일은 아닐 것이다. 1년에 수백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해도 그 사람의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삶에 큰 울림을 주는 책 한 권을 읽느니만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의식적으로 1년에 백 권의 책을 읽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내 삶에 울림을 주는 백 권의 책을 읽으려면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정기적으로 서점에도 가고, 이런저런 서평 정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책 값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도 좋겠지만, 내 평생의 독서목록에 올릴 백 권 정도는 사서 보는 게 어떨까 싶다. 내 책이라야 좋은 문장이 나오면 줄도 마음껏 긋고,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언제든 보고 싶을 때마다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터이다.
1년에 백 권의 책을 읽으려면 평균적으로 1주일에 두 권은 읽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매주 두 권씩 읽으려면 정기적으로 책 읽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여건이 된다면 출퇴근 시간을 이용하면 좋을 것이다. 그럴 여건이 안된다면 새벽 시간을 활용하면 어떨까 싶다. 필자는 체질적으로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 이 시간에 책을 읽으면 다른 어떤 시간에 읽는 것보다 책 내용이 잘 들어온다. 물론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므로 새벽 시간보다 밤 시간에 강한 사람은 밤에 읽어도 좋을 것이다. 하루중 어떤 시간이라도 좋으니 정기적으로 책 읽는 시간을 만들기를 권하고 싶다.
많은 책을 읽게 되므로 이를 기록하는 나만의 독서노트를 만들어 꾸준히 적는 것도 권하고 싶은 일이다. 시중에 전용 독서노트도 나와 있으니 이를 사용해도 좋고, 그냥 다이어리를 이용해도 괜찮다. 책을 다 읽으면 읽은 날짜와 서지사항(제목, 지은이, 출판사 등)을 적고, 책에서 가장 공감이 간 대목이 있으면 옮겨 적는다. 그 책에 대한 느낌이나 책을 읽고 든 생각을 몇 줄 적어보는 것도 좋다. 수첩에 적는 게 귀찮은 사람은 컴퓨터 파일로 작성해도 된다. 파일로 만들어놓으면 검색이 가능해서 훨씬 편리하다. 조금 부지런한 사람은 인터넷에 블로그를 만들어서 꾸준하게 기록해두면 더 좋다. 이런 블로그들이 서로 이웃이 되면 정보를 나누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백사모의 탄생을 꿈꾸며
필자가 일하고 있는 독서운동단체인 (사)행복한아침독서에서는 앞으로 ‘1년에 백 권 읽기’ 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1년에 백 권 읽기’ 운동을 소개하고, 백 권 기록장도 만들어 나눠주고,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모이면 ‘1년에 백 권 읽는 사람들의 모임’(백사모)을 만들어 이런저런 활동도 펼치려 한다.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책 정보도 나누고, 책 읽는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려고 한다. 이러한 활동은 각 도서관에서도 가능하리라고 보는데, 이 글을 본 많은 도서관에서 ‘백사모’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잘 운영되는 백사모는 ‘도서관 친구들’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백사모 활동이 활발해지면 우리나라의 독서문화에도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생각한다. 다독하는 좋은 독자들이 많아지면 좋은 책들은 판매가 순조롭게 될 것이고, 출판사들은 여기에 자극받아 수준 있는 좋은 책을 내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좋은 책들을 서로 권하는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독서문화의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개인의 삶의 질이 달라질 것으로 생각한다. 매일 시간을 내어 의식적으로 책을 읽는 일은 개인의 습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고, 좋은 책을 만나면서 생각도 변하고 삶의 모습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한 개인의 변화는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더 나아가서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책 권하는 사회가 되고, 책 읽는 사람들이 사회의 주역이 될 때 우리 사회가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수준높은 인본주의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지금 꾸는 꿈이 ‘한여름밤의 꿈’이 안되도록 『도서관 이야기』 독자들이 ‘1년에 백 권 읽기’ 운동에 함께 했으면 한다.
한상수 님은 책이 주는 행복을 더 많은 이들이 느끼며 살아가기를 바라며 일하는 전업 독서운동가이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면서 어린이 책을 만난 것을 계기로 10년째 민간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독서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인 (사)행복한아침독서의 이사장으로 일하면서, 책마을도서관과 동녘어린이도서관의 관장 일도 함께 맡고 있다. 번역서로 『아침독서 10분이 기적을 만든다』가 있고, 편저서로 『어린이도서관 길잡이』『책이 좋은 아이들』『대한민국 희망1교시 아침독서 10분』『선생님, 우리도 아침독서 해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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