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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행주·박종숙 지음 / 280쪽 / 16,000원 / 현암사
“사는(buy) 집이 아니라 사는(live) 집을 짓는 거죠”
우리에게 집은 어떤 존재인가? 지구상의 동물 중 사람만이 자신이 살 집을 스스로의 힘으로 짓지 못한다고 한다. 집은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생존 조건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집은 우리 삶을 옥죄며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존재다. 이는 우리의 주택 시장이 공적 기제가 작동하기보다 시장과 자본의 논리에 철저히 휘둘려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나라의 보통 사람들은 집값 마련을 위해 전전긍긍하며 돈을 벌고, 대출을 받고, 그 대출을 갚기 위해 생을 저당 잡힌 채 힘겹게 살아간다. 그런데 이런 현실을 거부하고 유쾌한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있다. 집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있다고 꼬드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귀를 솔깃하게 하고 마음 한 구석을 마구 흔든다.
여럿이 함께 행복한 집 지어 살기
『우리는 다른 집에 산다』는 개인이 감당하던 도시 주거 문제를 여럿이 함께 해결해보자고 의기투합한 아홉 가구가 서울 성산동에 코하우징 주택을 짓고 사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신문에 난 책 소개를 보고 바로 책을 사서 단숨에 읽었다. 실로 오랜만에 가슴을 뛰게 하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이 이후의 내 삶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는 느낌도 들었다.
코하우징(Co-housing) 프로젝트인 ‘소통이 있어서 행복한 주택 만들기’(이하 소행주)는 집에 대한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에 맞서 희망을 만들고자 시작되었다. 집 마련을 위해 생을 저당 잡힌 채 지금의 꿈과 행복을 희생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첫째였다. 집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기에 혼자 감당하지 말고 공동으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으니 문제를 느낀 개인들이 모여 ‘공공성’을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발현된 것이다. 이 책은 주택에 대한 고민을 개인이 아닌 ‘공동’으로 풀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희망의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진입 장벽이 높은 집의 기준을 낮추고 나에게 맞는 적정한 크기의 집을 찾을 것을 권한다. 그렇다고 거주 공간에 대한 기대를 포기할 것을 종용하지도, 소비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고 설교하지도 않는다. 우리에게 큰 결단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실적이며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보금자리 마련을 위해 일상의 행복을 뒤로 미루는 우리, 큰집을 사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자는 이들의 제안은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든다. 하우스 푸어나 깡통 아파트가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된 현실에서 집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든 이 책이 우리 사회에 주는 울림은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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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하우징은 일반적으로 ‘여러 세대의 개인주택과 공동체 시설, 옥외공간과 같은 부가적인 공동시설을 갖추고 공동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주거단지’를 말한다. 유럽에서는 1970년대에 덴마크에서 처음 시작하여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후 네덜란드에도 많은 코하우징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유럽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에서도 대안적인 주거방식으로 인식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소행주는 살 사람이 처음부터 관여해 집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추진하였다. 일본의 경우 이를 코퍼러티브 하우스(cooperative house) 방식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주택 구입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으로 토지를 구입하고 자신의 요구를 펼치면서 디자인하고 자신들이 공사를 발주하고 주택을 취득하는 방법이다. 즉 살아갈 사람들의 손으로 만드는 주택이고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집합주택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를 떠나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살기를 꿈꾸지만 경제적으로 웬만한 여유가 있지 않고는 현실화하기 쉽지 않다. 가장 큰 장벽은 땅값인데, 땅값이 저렴한 도시 외곽이나 시골로 생활근거지를 옮기는 것은 도시생활의 편리함에 익숙한 도시인들에게 쉽지 않은 선택이다. 『두 남자의 집짓기』가 소개한 땅콩집은 두 집이 공동으로 택지를 구입해서 주택을 지으면 택지 비용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선보여 땅콩집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소행주의 코하우징은 여기서 더 나아가 여러 가구가 공동으로 택지를 구입해서 집을 지으면 택지비에 대한 부담을 훨씬 줄이면서 도시의 공동체 생활이 주는 즐거움을 한껏 누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진 돈이 별로 없어도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음을 증명한 이들이 참 고맙고 대견하다.
집이 가진 본연의 기능에 대해 생각하기
건축가 이일훈은 이들이 사회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격려한다. 다른 이들이 선뜻 결정하기 주저하는 삶을 선택한 이들의 행동이 우리 사회에 괜찮은 메시지를 던져주는 의미 있는 사회운동이라는 말에 적극 동의한다. 코하우징은 앞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며 우리 사회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생각한다. 노후 자금은 부족하고 시간은 많은 은퇴 가정을 위한 공동주택이나 독립생활자 공동주택, 여성 가장 공동주택 등 코하우징의 장점을 살린 다양한 모습의 공동주택들이 우리 사회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우리의 주택문화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킨 의미 있는 책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아홉 가구가 한 집을 짓고 살아가면 갈등이나 어려움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집에 산다』에는 실제 공동주택을 추진하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입주하여 살게 되면서 겪은 문제들이 솔직하게 서술되어 있어 읽는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소소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들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집단 지성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갔다. 이들은 얘기한다.
“함께 나누고 보태며 사는 일은, 처음엔 부담스럽지만 분명 서로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그로 인해 더 많은 것을 보고 누리게 해주었다. 자기 것을 열고 함께하기 시작하면 그 무한함이 끝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들은 오늘도 또다시 모인다. 그리고 서로를 불러들인다. 삶을 창조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투자가치가 높은 집을 선택하고 자기 가족 중심으로 생활을 일구는 일반적인 모습과는 달리 집이 갖는 본연의 기능을 환기시키고 이웃 간의 교류를 일상화하는 주거문화가 충분히 가능함을 보여준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런 삶, 멋지지 않은가? 우리도 이렇게 살 수 있다고 꼬드기는 이들의 꼬드김에 오랜만에 가슴이 설렌다. (인문, 일반)
<코하우징(Co-housing)이란?>
- 입주자가 설계부터 함께하는 참여형 디자인 주택
- 개인의 경제적 부담을 공동으로 풀어내는 주택
- 함께 이용하고 즐기는 공동의 공간이 있는 주택
- 이웃과 마을을 향해 열려 있는 주택
한상수_㈔행복한아침독서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