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정 2001년 2월호 칼럼]
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 되기
우리 어린이들이 현재 어떤 책을 읽느냐하는 것에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 어린이들이 처해 있는 환경은 좋은 책을 읽기에 아주 열악한 환경이다. 우리 어린이들은 전자오락과 포켓몬스터, 텔레비전의 오락 프로그램에 몰입하고 있으며, 차분히 책 한 권 읽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떠밀려 다니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긴 인생에 있어서 어린이로 있는 때는 아주 짧은 시기이다. 감수성이 형성되는 이 시기에 접하는 한 권의 좋은 책은 그 아이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 중요한 시기에 우리 어린이들이 어떤 책을 접하느냐 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어린이 책 함께 보기
어린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 꼽으라면 ?공부하라?는 말일 것이다. 어린이들이 이 말을 싫어하는 이유는 엄마나 아빠는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강요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성인들의 독서량은 통계가 말해주듯 굉장히 낮다. 한 달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렇게 공부하라는 말을 수시로 하는 어른이 모범을 보이지 않는 한 어린이들에게 이 말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을 보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은 흐믓한 일이다. 아이들에게 책을 보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른이 모범을 보이는 것이 가장 좋은 독서 환경이다. 텔레비전만 보는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책읽는 모습을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아이들을 둔 부모라면 어린이들이 읽는 책을 읽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필자도 어린이 책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전에는 어린이 책을 유치한 수준의 어린이들이나 읽는 책으로 우습게 생각하였었다. 그러나 열린 마음을 가지고 어린이 책들을 한 권 한 권 보면서 내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질 않았다.
어린이 책이 주는 선물들
부모님들이 어린이 책을 자녀들과 함께 읽었을 때의 좋은 점은 많이 있다.
첫 번째로 자녀들과 같은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을 함께 할 수 있으므로 사고를 공유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녀들과 대화를 하려해도 서로의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에 대화가 겉돌기가 쉽다. 그렇지만 같은 책을 함께 읽는다면 그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무궁무진한 얘기들이 자녀들의 눈높이에 맞춰 술술 나올 것이다. 이렇게 대화를 통해 형성된 일치감은 서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
두 번째는 자녀들을 좋은 책을 권하고, 좋지 않은 책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책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 중에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책이나 읽을 필요가 전혀 없는 수준 낮은 책들이 많이 있다. 책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어린이들에게 좋은 책을 접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책들 중에서 좋은 책을 가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부모가 관심을 가지고 어린이 책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좋은 책을 가릴 수 있는 변별력이 생기게 마련이다. 다행이 요즘에는 「어린이도서연구회」를 비롯한 시민단체에서 어린이책들을 분석하여 좋은 책들을 권장하는 일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단체들에서 발행하는 권장도서목록을 참조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부모의 마음가짐이다. 좋은 어린이책을 골라서 자녀들에게 읽히겠다는 마음가짐만 있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참고로 어린이도서연구회는 어린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히자는 운동을 중심으로 어린이 교육 문화 운동을 20여년간 꾸준히 펼쳐온 시민단체이다. 매년 권장도서목록을 발행하고 있는데, 이 목록에는 연령별로 권장하는 책들이 수록되어 있어 어린이책들에 대해 안목을 가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정보들은 인터넷 홈페이지(www.childbook.org)에서도 얻을 수 있다.
세 번째는 어린이 책은 어른들에게도 큰 기쁨과 감동을 준다는 점이다. 동화의 세계는 다른 책들이 주지 못하는 깊은 감동을 우리 어른들에게 선사해 준다. 최근에 필자는 『마당을 나온 암탉』과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동화를 읽고 큰 감동을 받기도 했다. 밤늦은 시간에 눈물을 흘리며 동화책들을 읽으면서 메말랐던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동화책을 읽지 않았다면 결코 누릴 수 없는 행복이었다. 동화의 세계가 주는 감동과 아름다움을 맛보고자 하는 어른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동화책을 잡아 보기를 권한다.
책을 읽는 환경 만들어주기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더 생각해보아야 하는 일이 있다. 내 아이에게만 좋은 책을 권해주고 읽게 해주는 것으로 충분할까 하는 점이다. 내 아이 신경 쓰기도 힘든데 다른 아이들까지 신경 쓰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받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내 아이만 집안에서 올곧게 키우는 일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목표인지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독서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 긴급하고 중요한 일임을 알 것이다. 내 아이의 친구들, 우리 동네와 학교 아이들이 모두 좋은 책을 보고 즐거움을 느끼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함께 하면 좋겠다.
경기도 송탄에 있는 가나안교회의 최해숙 사모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첫 손주를 키우시면서 좋은 책들을 읽혀준 사모님은 그 책들을 당신의 손주만이 아니라 좀더 많은 아이들에게 접하게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환갑이 넘으신 할머니가 어린이책에 대해서 새롭게 공부하고 교회에 어린이도서관을 여신 것이다. 현재 가나안어린이도서관은 송탄지역의 어머니들과 어린이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 사람의 올바른 선택과 헌신, 그리고 열정이 얼마나 소중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하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사모님처럼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면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동화읽는 어른들
자기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라면 앞장서서 우리 어린이 문화를 가꾸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학교가 나서서 해야 하는 일이지만 아직은 담당자들의 의식이 바로 서있지 못한 게 현실이다. 다행이 많은 어머니들이 좋은 책을 보고, 열악한 어린이 문화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애쓰고 있다.
앞에서 얘기한 어린이도서연구회내 ?동화읽는어른?은 겨레의 희망인 어린이들에게 좋은 책을 주기 위해 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들의 모임입니다. 1993년에 시작된 이 모임은 현재 전국 80여 개 지역에서 3,0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동화읽는어른?은 어린이 책을 읽고, 좋은 어린이 책이 어떤 책인지 알아 나가면서 지역에서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문화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이 벌여나가는 일들은 강연회, 그림책 원화 전시회, 인형극, 노래극, 가족신문전시, 마주이야기 전시, 좋은 책 바꿔주기, 전통놀이마당, 슬라이드 상영, 그림책 만들기, 좋은 책 보내기, 좋은 책 전시 등의 일이다. 또한 학교 도서관 살리기, 공공 도서관 살리기 활동을 하면서 지역의 '독서 문화 환경'을 바꾸는 일도 벌이고 있다.
나는 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내 아이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많은 아이들을 위한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이들의 열린 사고와 실천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다. 희망과 열정을 가지고 조금씩 이루어나가고자 하는 이들이 만들어 나가는 어린이 문화가 우리 사회의 주류 어린이 문화가 되는 그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한상수․동녘작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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