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정 2001년 3월호 칼럼]
권정생의 『강아지똥』과 『황소 아저씨』
권정생 선생님은 우리 아동문학계에 있어서 보물과 같은 존재이다. 생존해 있는 동화 작가 중에서 가장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고 계신 분이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선생님의 글에는 기독교적 가치관이 억지스럽지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읽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여 걱정이 많았는데, 최근에 좋은 작품을 연이어 내고 있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모르겠다.
이달에는 권정생 선생님의 대표적 그림책인 『강아지똥』(길벗어린이)과 최근에 나온 『황소 아저씨』(길벗어린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지면 관계상 다루지는 못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용으로 나온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우리교육)도 많은 감동과 재미를 안겨주는 좋은 책이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올만한 책으로 주일학교에서 이야깃거리로 삼으면 좋을 듯하다.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살아온 삶
선생님은 당신의 삶에 대해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살아오셨다는 표현을 하신다. 일본 도쿄의 변두리인 시부야에서 태어나신 선생님은 거리의 청소부였던 아버지가 쓰레기더미에서 건져온 동화책을 읽으며 혼자 글을 깨우친다. 해방 이듬해 한국에 돌아온 선생님네 가족은 어려운 살림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다. 부산으로 간 선생님은 말못할 고생을 했지만,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고 한다. 이때 선생님은 늑막염과 폐결핵을 앓게 된다. 이렇게 선생님의 몸에 들어간 결핵균은 평생동안 선생님의 몸을 갉아먹게 된다.
선생님의 삶은 마치 성서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를 연상하게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가 쓴 동화 ‘강아지똥’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비에 맞아 자디잘게 부서진 채 땅속에서 민들레의 뿌리로 모여들어 마침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강아지똥 말이다. 한 송이 꽃을 피워낸 강아지똥처럼 아픈 몸을 부여안고 쓰여진 동화들은 아이들과 어른들의 마음을 풍성하게 살찌우고 있다.
우리 그림책의 상징적 존재, 『강아지똥』
『강아지똥』은 1969년에 월간 「기독교 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은 동화이다. 조그만 강아지인 흰둥이가 골목길 담 밑 구석에 눈 똥. 강아지가 눈 똥이니까 강아지똥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쓸모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강아지 똥. 스스로의 존재에 절망감을 느끼고 있던 강아지 똥은 자신을 위해 거름이 되어 달라는 민들레의 말을 듣고 너무나 기뻐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부서뜨려 한 송이 아름다운 꽃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어느 날 우연히 선생님은 처마 밑에 버려진 강아지똥이 비를 맞아 흐물흐물 그 덩어리가 녹아내리며 땅 속으로 스며드는 모습을 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강아지똥이 스며 녹아내리는 그 옆에서 민들레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 모습을 보고 “아, 저거다”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며칠 밤을 새워 강아지똥 이야기를 쓰셨다고 합니다.
이 글을 그림책에 맞게 다시 다듬고, 예스러운 색감과 선이 살아 있는 정승각 씨의 그림이 어우러져 1996년에 그림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책은 수명이 짧은 다른 책들과는 달리 한국의 대표적인 그림책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판매량이 늘어나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출판사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까지 13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이 정도 판매량이라면 성인 도서에서 밀리언셀러에 버금가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강아지 똥』은 일본에서도 출간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의 따사로움을 주는 『황소 아저씨』
『황소 아저씨』는 『강아지똥』을 함께 만든 권정생 선생님과 화가 정승각이 다시 콤비를 이뤄 만들어 낸 그림책이다. 넉넉한 마음씨를 가진 황소 아저씨의 도움으로 부모를 잃은 새앙쥐 형제들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낸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추운 겨울날 엄마를 잃고 걷지도 못하는 네 동생의 먹을 것을 찾아 용기를 내어 황소 아저씨의 구유(여물통)를 찾은 형 새앙쥐. 새앙쥐의 눈에 비친 황소는 산만큼 거대하고 무서운 존재이다. 그러나 새앙쥐의 딱한 사정을 들은 황소는 구유에 있는 먹이를 마음껏 가져가라고 할 뿐만 아니라 빨리 가져갈 수 있도록 자기의 등을 타고 지나가라고 말한다. 황소 아저씨의 배려로 무려 14번이나 황소 아저씨의 등을 타넘으며 동생들의 먹이를 나르는 형 새앙쥐. 이틀이 지나 동생들이 걸을 수 있게 되자 동생들과 함께 황소 아저씨네 외양간으로 온다. 넉넉한 가슴을 가지고 있는 황소 아저씨는 아예 새앙쥐 5남매를 외양간에서 살도록 해준다. 그 덕분에 어린 새앙쥐들이 겨울이 다 지나도록 따뜻하고 배부르게 잘 지냈다는 이야기이다.
동생들을 먹이기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먹을 것을 찾아 나선 형 새앙쥐에게서 50~60년대 가족의 호구를 위해 고향을 떠나 공장에 들어가야만 했던 많은 이 땅의 형님, 누님들이 생각되었다. 공장에서 야근을 하며 부쳐오는 돈으로 동생들은 생계를 잇고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황소 아저씨가 먹다남은 찌꺼기를 얻어다가 동생들과 나눠먹는 새앙쥐 형제들의 모습을 보며 가난했지만 이웃간에, 형제간에 정이 넘쳤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든 것이 풍요로워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운 요즘 아이들이 이 책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아이들과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중간중간 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대목이 많아서 책을 재미있게 읽게 만들어준다.
황소 아저씨에게 처음 가는 날 새앙쥐 남매들은 추녀 밑 고드름을 녹여 눈곱도 닦고, 콧구멍도 씻고, 수염도 씻는다.
“언니, 내 얼굴 이뻐?”
막내둥이가 물었어요.
“에그, 왼쪽 볼에 코딱지 묻었다. 좀더 씻어라.”
막내둥이는 얼른 코딱지를 씻었어요.
이 대목에서 고드름에 손을 묻혀 코딱지를 씻는 막내 새앙쥐의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권정생 선생님의 따뜻한 글을 제대로 살리는 것은 화가 정승각의 정성이 담뿍 담긴 그림이다. 이 책의 그림은 언뜻 봐도 공이 많이 들었음을 느끼게 해준다. 정승각은 독특한 방법으로 울퉁불퉁한 입체감을 표현했는데, 지점토로 빗은 입체조각위에 모시천을 덮고 수성물감으로 채색을 하였다. 파란색 바탕에 흰색과 노랑색이 어우러진 그림은 힘과 정겨움을 동시에 느껴지게 만든다. 근육이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듯한 황소와 구유에서 맛있는 먹이를 먹으며 행복해 하는 새앙쥐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이 작가의 역량을 한껏 느끼게 해준다. 포만감에 젖은 새앙쥐 다섯 마리와 황소가 함께 어울려 자는 모습은 한참동안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이 책을 보며 한국의 그림책이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올라갔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계의 어느 그림책보다도 뛰어난 그림책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듯 하다.
선생님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우리 나라 어린이 책 시장은 현재 최대 호황기를 맞고 있다. 이름 있는 출판사들도 돈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앞다투어 어린이 책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어린이 책 시장의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최근의 모습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어린이 책의 세계적인 전시장인 볼로냐 책 전시회에 한국의 출판사들이 대거 몰려가서 싹쓸이를 한 이야기는 세계의 출판 시장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충분한 내용 검토없이(검토할만한 시각을 갖춘 편집자도 드물다.) 수준이 떨어지는 외국의 그림책을 비싼 로열티를 주고 들여와 출간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에 나오는 책들을 보면 어떤 안목과 기준을 가지고 출간했는지 의아한 책들이 많이 있다. 이제는 정말 쏟아지는 책들 속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골라 주는 일이 중요한 일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수준 있는 책을 만나게 되니 무척 기쁘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놔두고 우리 창작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출판사와 작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권정생 선생님의 건강을 기원한다.
선생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서 좋은 글들 많이 만들어 주세요.
한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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